신도 버린 사람들 - 나렌드라 자다브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경제학자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 책은 주로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님인 소누와 다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인도의 1947년 독립으로 인하여 폐지된 불가축 제도가 남긴 잔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간디와 바바사헤브라는 불평등 저항 운동가와의 대립 구도와 자다브의 부모님이 가지는 세계관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부모님은 바바사헤브라는 불가촉천민 출신 불평등 저항 운동가의 추종자였다. 인도의 독립과 함께 법적으로는 불가촉천민 제도가 폐지되었으나 실제로 힌두교의 율법상 천민에 대한 차별은 현존했다. 그 시기에 바바사헤브라는 법률가는 합법적으로 천민 계층을 지도하여 실질적 평등을 위해 노력하였다. 처음에는 힌두교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종국에는 불교로 개종하는 방법을 택하여 인간의 평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힌두교를 버린다. 
 
이에 대해 반영불복종운동, 즉 인도의 독립투사로 유명한 간디는 의회의 입장에서 불가촉천민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만, 근본적인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즉 간디는 불가촉천민은 전생의 업으로 인하여 현생을 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인간적인 동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간디의 정치적 견해는 영국이라는 제3국가가 개입되어 천민 평등 운동이 친영주의적 성격을 가졌던 사실과 완전히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각자 처한 입장에서 정당한 권리를 찾아 나가는 모습, 즉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은 상당히 이기적인 듯 하다. 


간디는 상위 카스트 출신으로서 천민에 대한 불평등보다는 영국의 지배 하에서 받는 인도 국민으로서의 불평등, 그리고 인종 차별에 대한 불평등을 몸소 겪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간디는 카스트의 전생의 업에 관한 이야기를 믿으며 카스트는 부정하지 않은 채 자신이 겪었던 불평등 요소들에 대해서만은 현명하게, 평화주의적으로 극복해 나갔다. 

반면 바바사헤브는 스스로 천민으로서의 차별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인도를 지배하였던 영국과 손을 잡고서라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천민에 대한 차별을 극복해 보고자 하였다. 

한 단계 더 들어가 글쓴이 자다브의 아버지인 다무는 바바사헤브를 추종하며 아내 소누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며 심지여 여성인 소누는 가정의 가장인 자신의 종교 개종 의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남편의 주장에 소누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힌두교 신상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침대 밑에 봉하여 숨겨두기까지 한다. 


간디가 진정 카스트를 전생의 업으로 받아들였다면 왜 영국에 의한 지배는 전생의 업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바바사헤브의 추종자인 다무는 가정 내에서 아내 소누가 여성으로서 자신과 동등한 인간적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구실 좋은 말로 포장하고 허울 좋은 변명을 늘어 놓아도, 결국 사람이 진정으로 노력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스스로 어떠한 일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자각했을 때, 그저 수긍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삶 보다는 극복하고자 하는 삶이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재산을 축적하는 상업적 행위와 이러한 신념적 이성에 의한 행동의 차이는 맹목적 추종의 유무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항에 대하여 불합리하다고 느끼며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들에 대해서만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주장한다면, 사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물고 물리는 수레바퀴같이 돌아갈 뿐일 것이다. 대기업은 불합리한 수출입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개인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사회적 약자 계층은 기회적 평등을 주장하니 정치인들은 그저 물레만 돌돌 돌리며 이쪽 저쪽 왔다갔다 하면서 선동하면 될 뿐이다. 근본적 융화가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타인을 위해 신념을 가지는 것은 하물며 신에게 기도함에 있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자다브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지는 세계관일 것이다. 자다브의 아버지 다무는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옹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소누는 단순하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두 부모의 인생이 자녀의 인생에 대해 항상 이상적이기만 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에 대한 열의와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교육시킨 점과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작은 세계와 넓은 세계를 동시에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개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의로운 상태' 가 많은 부분 개인의 불평등만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지만, 의지와 극복, 그리고 교육을 통한 새로운 세대의 출발의 측면에서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인도의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느낌을 받고 싶을 때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 역시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by 하나 | 2009/01/27 00:17 | Books | 트랙백

'너는 어떤 사람이다.'

 연구소에서 강사 한분을 모시고 심리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질문지에 응답하게 하여 사람들을 네가지 그룹으로 나누었다. D(주도형), I(사교형), C(신중형), S(안정형) 의 네 그룹으로 나눈 후 같은 유형끼리 한 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그림이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전지에 쓰게 하여 벽에 붙였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놀라운 현상이 눈에 띄었다. 심리 테스트가 기막히게 사람들을 잘 나누어서가 아니라 각 그룹에 속하게 된 사람이 평소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주도적이거나 신중한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어떤 유령이 스쳐 지나가며 사람들을 조종했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타인을 모방함으로서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방을 시작한다. 가정의 구성원들을 모방하기 시작하여 나아가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모방한다. 테이블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한다. 주도형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경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타인을 보며 자신도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안정형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누가 선뜻 나서지 않으니 그저 앉아서 바라볼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역시 조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림을 그려야 겠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생각나는 그림' 이라는 것은 결국 '남들이 생각할 것 같은 그림' 을 그리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미 조원들이 써 나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 한 것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버리기 시작한다. 네 그룹으로 나누어진 사람들은 상대방이 'XX형' 의 사람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도 원래부터 그러하였던 것처럼 행동한다. 

 두번째는 '너는 어떤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발화자에게 어느정도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내가 그러하다 라고 실제로 생각하게 된다. 심리 테스트에 앞서 여러가지 전문 지식들을 나열한 강사에게는 절대적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강사 손에서 나누어진 심리 테스트지의 결과는 강사가 '당신은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이미 조별로 나누어 앉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너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망령이 맴돌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렸을 때 촛불의식을 비롯하여 집단 의식의 힘을 느껴 본 경험이 무수히 많다. 사회에서 제공되는 교육들은 집단과 자각심을 활용하여 교묘히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어 낸다. 스키너라는 과학자가 딸 데보라를 상자에 넣어 강화와 처벌을 통해 키우려 했다는 소문이 남 이야기가 아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너는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커나간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조금 더 노력을 하여 내가 원래 그래야 하는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이렇게 보면 교육적 차원에서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유령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심리적 세뇌 밑에는 파시즘의 덫이 놓여져 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만들어 내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죄의식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무기를 국가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어느새 월드컵과 올림픽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되어 버려있고,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사방 팔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환호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정교하고 공정했던 도덕적 관념들은 국가가 개입되는 순간 쉽게 무너진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순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나에게 의지를 주입하는 동력이 자신 이외의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 힘을 보낸 대상이 나에게 원하는 행동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원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할 때만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다' 라고 말하기를 자제하여야 하며, 집단은 개인의 가치 판단은 대신한 채 결과만 주입하는 형태의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자신 안에서 조용히 외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by 하나 | 2008/08/14 00:48 | 트랙백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이슬람'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히잡을 뒤집어 쓴 여성과 일부다처, 그리고 내분과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생각난다. 지금까지는 각종 사진들에 의해 소개된 병들고 상처받고 불구가 된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전부였으며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었던 9.11 테러를 생각하면 한 때 아프간을 점령했던 탈레반에 대한 반감이 생겼었다. 한편, 왜 국민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종교와 정권에 순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아프간의 반군 세력이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의 공산 정권을 몰아 내는 사건부터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의 붕괴까지를 아프간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낱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의 타당성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코란은 어머니와 같이 친근한 존재였으며, 전쟁은 단지 아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현실이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하는 원수들을 직접 눈앞에서 처형시켜주는 집권 세력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각종 미사일과 총탄이 빼앗아간 사람들의 이성이 바로 탈레반 탄생의 밑거름이었던 셈이다. 탈레반은 교묘히 이슬람의 전통을 재해석하여 여성의 인권을 바닥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밀어 붙였다. 결국 아프간은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로 반쪽자리 평화를 되찾게 되지만, 이미 망가져버리고 뒤틀려버린 사람들의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 희망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책의 표지와 같은, 황토색으로 뒤덮인 도시 저 멀리서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쟁은 사람들을 삶의 고차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끌어내려 생존에 대한 걱정거리로 던져 놓는다.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이 전쟁 속에서 싹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그저 이기적이게도, 책장을 넘기며 우리들의 삶에는 전쟁이 찾아오지 않기를 빌었다. 책 속의 주요 내용인 두 여자의 우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by 하나 | 2008/04/20 21:58 | Book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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